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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포닥

[미국포닥] 미국은 인내심없이는 살 수 없는 곳

이 연구실에 온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미국 와서 기다리는 일을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나는 진정 성질 급한 한국인인 것인가?

 

1. 행정처리

열쇠받기 위한 행정처리에도 한 세월이 걸렸었다.

일이 마무리됬다고 메일도 안 오고 열쇠가 이미 나오면 메일 준다고 해놓고서 메일 안 준다. 그냥 내가 찾아가야 함.

이집트에서 온 포닥은 열쇠 안받았는데도 그냥 학교 나온다. 나도 그렇게 했었어야 했다...

 

2. 시약

2주 전에 주문한 시약은 도착할 기미가 안 보인다.

구하기 어려운 희귀한 시약도 아니고 Fisher에서 파는 CdSO4 시약인데 대체 왜 안 오는 걸까?

한국에서는 빠르면 이틀만에도 시약이 오고 그랬는데 여기서는 진짜 한 세월이다.

 

3. 분석

그래서 일단 다른 시약으로 pre-test를 했고 중금속 분석을 위해 분석센터 교육용 장비인 flame atomic absorption spectrometry (FAA)를 가르쳐달라고 담당자에게 요청했더니 땡스기빙 데이 이후에 배울 수 있다고 미뤘고 수요일에 배우다가 막혀서 끝까지 못 배우고 다음 주 화요일에 계속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솔직히 ICP에 비하면 매우 FAA는 매우 간단한 장비이기때문에 어제 나 혼자 try해도 되냐고 물었고 그래도 된다고 해놓고 오늘 문 열어 달라고 찾아가니 화요일에 배우고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기기 manual도 없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없다. 홈페이지 가서 보내달라고 문의했는데 과연 보내줄 지 의문이다.

여기 와서 중금속 실험을 하겠다고 한 내 잘못도 있지만 유기물질하기에도 어차피 연구실엔 HPLC 딸랑 하나 있다.

LC-MS는 또 분석센터에 맡겨야 함 ㅎㅎ...

 

4. 코로나 검사 결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던 옆 방 한국인 학생의 룸메가 코로나 확진이 되어서 나도 한국인 학생의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에 있었다.

그 룸메도 검사 받고 4일 만에 결과를 받았는데 한국인 학생도 2일 후에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주말부터 테스트를 하려고 시도했지만 못했고 월요일에 검사받았으니까 나는 4일간 거의 집에 있었다.

여기는 코로나 확진에 걸려도 밖에서 음식 구해오고 장보고 하는 판이지만 출근 못 하니까 좀 답답하긴 했다.

한국에는 언제 어디든 검사를 받고 하루만에 결과를 받지만 여기는 차가 없으면 검사받기도 어렵고 결과도 꽤 늦게 나온다.


내가 1년 안에 실험 데이터를 다 얻을 수 있을지 정말 의문이다.

그냥 여기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한국 가서 (갈 곳은 아직 없음) 마무리를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나마 있는 물건으로 실험하고 있으니 연구실 사람들이 왜 벌써부터 실험하냐고 신기해하던 게 이제 이해가 간다.

이런 느린 행정과 분석 절차, 그 분들도 다 겪었던 일... 어쩌면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될 데로 되라 하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진행 속도가 느리면 괜히 교수님한테 혼날 것 같고 그랬는데 여기서 과연 외국인 지도 교수가 뭐라 할까는 생각은 든다.

인건비도 내가 들고 왔고 언젠가 뭐든 써서 논문에 이름 넣어 드릴텐데...

 

남편 말대로 리뷰 논문이라도 쓰던 지 해야지 아니면 마음이 조급해서 더 힘들 것 같다.

노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한 달을 이렇게 보내니까 더 이상 놀고 싶은 생각도 안 든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 사는 게 좋다고 하던데, 연구하기에는 좋은 환경은 아닌 거 같다.

 

여기 와서 내가 한 단 한가지 실험 사진... 허접해서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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